프랑스 영화감독 루이 푀이야드의 <팡토마(1913~1914)>가 최초의 갱스터 영화 작품이긴 하지만, 갱스터 영화는 일찍부터 미국식 장르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갱스터 영화가 미국적 장르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갱스터 영화 담론의 동시대성 때문이다. 1920년 후반에 등장한 이 장르는 사운드의 도입으로 자신의 시대를 열었고, 1930년대 초 고전인 <리틀 시저(1930)>, <인민의 적(1931)>, <스카페이스(1932)>를 낳으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이때는 금주법과 공항의 시기였기 때문에 주류의 생산이나 판매 및 수송 등이 금지되었으며,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도산과 실업이 만연하던 때였다. 미국의 사회/경제사적 사건인 이 두 요소가 영화 속 갱들의 신화적 가치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갱들의 수가 공권력의 규모를 훨씬 앞질렀기 때문에 금주법을 강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금주법은 전례 없이 갱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갱들의 전쟁과 범죄는 매스 미디어의 양식 중 하나가 되었으며, 곧이어 스크린에도 옮겨졌다. 실제로 이 시기의 많은 갱스터 영화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갱스터주의는 탐욕과 야수적인 폭력, 간단히 말해 도시에서의 공격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갱스터 영화는 그처럼 흑백이 분명하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되었던 두 번째 사회/경제적 요소(공황)를 살펴보면, 갱스터 주인공이 왜 그렇게 복합적인 뉘앙스로 성격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공황은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를 폭로했다. 공황으로 드러난 것처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철저하게 위계질서가 나누어진 사회에서 이 꿈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겠는가. 아메리칸드림에 따르면, 성공은 물질적인 부를 의미했다. 물론 그 안에는 개인의 과시가 함축되어 있다. 갱들은 미국의 부자나 유한계급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 출신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부와 자기 과서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훔치는 길 외에는 없다. 돈을 손에 쥔다는 것은 타인을 지배하는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갱들은 타인의 희생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모순을 구체화했다. 갱들의 존재가 이 모순을 폭로하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으로 영화를 끝맺음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불가피했다. 아메리칸드림이 그런 냉소적 방법으로 성취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실패해야 할 뿐 아니라, 아메리칸드림의 모순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에 실패해야만 하는 것이다.
고전 갱스터 영화는 사운드의 도래와 함께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사운드는 이 장르에 사실성을 보강했다. 위너브라더스는 <리틀 시저>와 <인민의적>으로 이 장르의 시대를 활짝 연 첫 번째 스튜디오였으며, 이 영화들은 필름 느와르의 선구자로 간주되었다. 1928년 쯤에 이 영화사는 마침내 수직 통합 체제를 완비해 다른 메이저들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또한 영화사상 처음으로 사운드를 도입, 독자적인 메이저로 발돋움하면서 다른 네 메이저들과의 경쟁에 돌입했다. 워너브라더스는 저예산 단기 촬영이라는 독특한 제작 관행 때문에 갱스터 영화와 깊은 연을 맺게 되었다. 싸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미쳐 백스테이지 뮤지컬과 갱스터 영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워너브라더스는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이 새 대통령의 사회/경제적 개혁 조치로 받아들여진 뒤,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 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사회적 리얼리즘과 강인한 이미지의 정치성 때문에 워너브라더스의 영화들은 인민주의를 견지하는데, 이것은 특히 노동 계급 관객의 관심을 끌어 그들이 주 고객이 되는 데 일조했다.
주인공 남성의 실체를 벗겨보면, 갱스터 영화는 도시의 웨스턴으로 불릴 만하다. 그러나 규칙이 분명한 웨스턴과 달리, 갱스터 영화에는 죽음을 제외하고는 규칙이 없다. 출세욕과 시회 통제와의 대립이 갱스터 영화의 중심부에 놓인다. 주인공은 통제에 굴복하기보다는 짧은 생을 선택하며, 여기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숙명론의 아우라가 생겨나게 된다. 그러나 관객들은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고 영화가 아무런 규칙 없이 지속되는 동안, 즉 사회가 붕괴되기 직전에 이르도록 구성된 내러티브를 쫓아가며 도시의 악몽을 목격하게 된다.
갱스터 영화는 도시적인 세팅, 의상, 차, 총격, 폭력이라는 도상학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고도로 스타일화한 장르이다. 내러티브는 갱스터의 출세와 몰락을 좇는다. 이러한 교훈적 진행은 물론 관객의 이데올로기적 공감을 이끌어 내지만, 그보다 먼저 이루어지는 것은 영웅의 무법성과의 동일시에서 오는 쾌락이다. 죽음을 향한 운명 속에서 얻어지는 주인공의 자기 인식은 관객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우리는 그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주인공과의 로맨스에 빠졌다가 결국 자신의 품 안에서 죽어 가는 주인공을 지켜보는 여성의 등장은 관객을 그녀의 위치에 서게 만듦으로써, 갱에 대한 동정심, 때로는 이해심까지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영화의 메시지는 관객에게 도덕적 정당성의 관념을 제공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결국 소인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갱스터 영화의 고전기(1930~1934)는 도덕적 공황 분위기에서 돌연 중단되었다. 압력을 받은 헤이스 오피스는 영화 산업에 자기 검열 이상의 것을 요구했다. 1934년에 무엇보다도 갱을 미화하는 영화를 겨냥해 제정된 제작 윤리강령이 강제성을 띠게 되었다. 당시 갱스터 영화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으므로 영화사들은 이 황금 사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폭력성을 낮추라는 압력이 가해지자 영화사들은 일련의 하위 장르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탐정 영화와 형사 스릴러였다. 이들 영화는 폭력성을 별로 누그러뜨리지 않는 대신 무질서를 해결하는 법과 질서를 전경화 했다. 다시 말해 갱과 폭력의 영웅화를 중단하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영화사들은 영웅의 역할은 갱에서 형사 또는 탐정으로 이전시켰다는 말이다.
헤이스 코드의 간섭 때문에 필름 느와르의 씨가 뿌려졌다. 갱의 가학증은 필름 느와르 주인공에게서 보이는 위기에 처한 남성성의 죄의식과 불안으로 이행했다. 미국 현대 도시의 모호하고 불투명한 풍경을 헤쳐 가며 하드보일드 탐정은 정의를 추구한다. 도시의 공간적 모호성은 부패가 지배하고 법이 죄를 응징하지 못하는 그 사회의 모호성과 복잡성을 반영한다.
따라서 수사를 맡는 것은 대개 탐정이다. 그는 공식적인 법, 다시 말해 자신에게 주어진 법을 벗어난 법 외부에 있는 존재이다. 주변인으로서, 또한 외곽에 존재함으로써 그는 범죄를 해결하고 악당을 응징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전통적으로 탐정은 남성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여성 작가가 쓴 최근의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들은 여성 탐정을 등장시켜 왔는데, 이들은 곧이어 영화에 등장했다.
이들은 남성 탐정들과 똑같이 거칠고 가난하다. 가난함은 탐정의 성격화에서 중요한 대목인데, 이것은 그들의 사건 해결 방식이 법을 따르지는 않지만 자기가 돈 때문에 일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뜻한다. 형사 스릴러에서 여성들은 대개 초기 갱스터 영화에서보다는 중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아름답고 위험하며, 종종 살인까지 저질러 형사의 조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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