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증은 상대방이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보는 행위이다. 이것은 흔히 보는 행위가 불법적이거나 불법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 돈을 낸다. 그런데 일단 스크린 앞에 앉게 되면 우리는 관음자와 같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은 상태에서 스크린 위의 사람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는 관람 주체가 된다.
우리가 쾌락을 이끌어내는 것은 이런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음증은 관객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연기를 촬영한 카메라도 관음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영화 내의 어떤 인물이 관음증적인 입장에 있는 경우도 꽤 흔하게 볼 수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크(1960)>가 대표적인 사례다. 관음증의 복합성과 가능한 모든 주체 위치의 설정을 탁월하게 전경화시킨 영화로는 마이클 파웰의 <피핑 톰(1960)>이 있다.
페티시즘은 육체의 일부, 가장 흔히는 여성의 육체에 과잉으로 의미 부여하는 것을 이르는 개념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여성의 젖가슴이나 다리는 흔히 카메라에 의해 돋보기에 찍히고, 그럼으로써 의미가 과잉 부여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상 약호(옷이 한 문화권에서 부호화되어 특별한 형식 체계와 의미를 가지는 현상)는 이런 페티시화 과정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여성은 매끄럽고 꽉 끼는 옷을 입거나 까맣고 긴 야회용 장갑을 끼곤 한다. 아니면 굽이 아주 높거나 뾰족한 하이힐이나 아주 짙게 칠한 반질반질한 손톱일 수도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관음증과 페티시즘을 남성이 성적 차이에 대한 자신의 공포와, 그가 그 차이의 결과라고 느끼는 거세 공포에 대처하기 위해서 채택하는 2가지 전략이라고 본다.
1번째 전략(관음증)을 채택함으로써 남성은 응시를 통해 여성을 고정시키고 관음증적으로 그녀의 육체를, 그럼으로써 그녀의 섹슈얼리티를 조사한다. 즉 여성의 그의 조사 대상이 되고 그런 방식으로 그는 그녀를 안전하게 가두는 것이다. 그녀는 그의 시선과 감시의 대상으로서 그에 의해 의미가 부여된다.
관음증 가운데 가장 극단적 형태는 사도마조히즘적 행위이다. 남자는 여자를 지켜보고 여자는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도 있고 혹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응시를 되돌려 보낼 수 없다. 응시와 그녀에 대해 수행을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녀는 그의 희생물이고, 그는 그녀를 폭력적으로 공격하거나 심지어 죽일 수도 있는 잠재적 사디스트이다. 대부분의 스릴러나 필름 느와르는 서스펜스를 노려서 이런 사도마조히즘적 역학 관계에 의존하곤 한다. <사이코>가 분명한 사례이고, <샤이닝(1980)>도 그렇다.
<미저리(1990)>의 캐시 베이츠는 적어도 씁쓸한 결말에 이를 때까지 흔치 않은 권력관계의 역전에 의해 다리가 부러진, 그럼으로써 성적으로 불능인 자신이 좋아하는 대중소설 작가를 붙잡아 놓는다. 그녀는 그를 계속 감시하고 그가 감히 돌아보려 할 때 도끼와, 페니스처럼 생겼거나 거세에 쓰이는 모든 종류의 도구로 그를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끝내 모든 것이 잘 해결돼 그는 풀려난다. 결국 이것은 한 편의 코믹 스릴러가 된다.
페티시즘이라고 해서 여성에게 더 나은 건 아니다. 페티시즘은 차이를 부인하는 전략이다. 남성은 여성에게서 숨겨진 남근을 찾아내려고 한다. 이런 페티시화는 육체를 파편화하고 조각 나 육체의 일부(또는 의상)에 의미를 과잉 부여함으로써 생겨난다. 이처럼 의미를 과잉 부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그런 부분들을 그 자체로 완벽한 것으로 보아 남근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때 차이를 부정함으로써 여성의 형태는 가두어진다. 여성은 남근적이므로 그녀는 안전한 존재로 인식된다. 마를렌 디트리히는 특히 조셉 폰 스턴버그의 영화에서 하나의 페티시가 되었다. 즉 그녀는 남성화된 여성의 형태를 띤다. 마릴린 먼로는 그녀의 젖가슴과 다리가 과잉 의미 부여됨으로써 성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졌다. 좀 더 최근의 사례로는 캐슬린 터너와 테레사 러셀을 들 수 있다. 그들이 맡은 대부분의 역은 꽉 끼는 검정 드레스를 입고 뾰족한 하이힐을 신었으며 반짝이는 손톱과 길게 늘어진 머리칼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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